'DREAM'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6.02.09 [松]오늘도 반짝
  2. 2016.01.31 Ssul2
  3. 2016.01.31 Ssul1
  4. 2016.01.30 [牛]원수드림_ssul
  5. 2015.12.19 [黃]02.보이지 않는
  6. 2015.12.17 [黃]01.보이지 않는
  7. 2015.12.17 [黃]00.보이지 않는

[松]오늘도 반짝

DREAM 2016. 2. 9. 20:01

*류현님(@fian5214) 선물♥

*둘다 성인, 동거 설정








늘도, 반






일요일 아침이었다. 마츠카와가 창문을 열어둔 건지, 머리맡에서 눈으로 바로 바깥 빛이 쏟아졌다. 햇빛으로 피부 표면이 달구어진 느낌을 조금 더 감상하고 싶어 조금 뒤척였다. 정신은 말짱히 깨어있었지만 몸을 일으켜기는 싫은 느낌, 바로 그 느낌 말이다. 이불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방문을 넘었는지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아, 맛층이 깨우러 오겠다. 누나 일어나기 싫어요,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잠든 척 다시 이불로 파고들었다.


"누나?"
"……."
"일어난거 다 아는데."
"……."
"어제, 아팠어요?"


한 가지 먼저 말해두어야 할 점은, 나는 연기를 못하는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주 잘하진 못하더라도, 자는 척이나 배부른 척이나 이런 사소한 거짓말들은 능숙하게 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니까 여기 이 부분에서 내가 입꼬리를 실룩거린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해 두고 싶다. 저것은 다 저 능구렁이 때문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움찔 했던 얼굴 근육을 돌이키기 위해 이를 앙다물었다. 뭐, 그가 그 작은 변화를 잽싸게 잡아채었으리라는 건 안 봐도 알고 있었다. 원래 그런 애잖아, 응.


"안 일어나면 어제 하던 거 마저 해요?"
"으응……. 졸려… 잘래……."


밤을 샌 것처럼 피곤한 얼굴로 찌뿌둥하게 웅얼거렸다. 나 오늘 밥 당번도 아니고, 아침 일찍 약속도 없고. 더군다나 오늘은 일요일인데! 눈을 감은 채로 소리 나는 쪽을 밀어내며 이마를 베게에 파묻었다. 왜인지 한숨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불로 따뜻하게 덥혔던 어깨가 서늘해졌다. 난 아직 침대 매트리스와 물아일체의 경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눈으로 직접 들어오는 햇빛이 부셔 실눈도 채 못뜬 상태였다. 아, 잠시만. 불안한데. 커다란 무언가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저리…가……. 누나 조금만 더 잘게……."
"해 다 떴어. 겨울이라 해도 늦게 뜨는데."


쪽, 쪽, 쪽. 차마 서술하기도 낯부끄러운 소리가 방 안 공기를 울렸다. 어떻게든 막아 보려 다리를 버둥거렸지만 결과적으로는 본전도 못 찾은 꼴이 되었다. 내 이불을 빼앗겼으니까 말이다. 두 손으로 꼭 쥐고 있던 민무늬의 천은 손쉽게 그 한 손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아 정말, 치사하게 이러기야? 마츠카와는 아무런 대답 없이 빙글거리며 계속 가까워졌다.


"아, 알았어. 알았어. 일어났어, 일어났으니까 옷 입게 저리 나가. 나 지금 아무것도 안 입었어."
"오."
"믿냐?"


바닥에 나뒹구는 옷가지들을 주워 다시 침대에 앉았다. 스타킹, 치마, 블라우스. 어제 나 옷도 안 갈아입고 뭐 한거야? 아, 응. 그렇구나. 나 어제……. 그랬구나. 오랜만의 토요일 자유시간이라면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놀러다닌 게 생각났다. 술 엄청 먹어서 다 잊어버릴 줄 알았는데.
옷장을 열어 대충 트레이닝복 바지와 목이 늘어진 티셔츠를 꺼내고, 티셔츠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흰 면에 살굿빛 얼룩이 눈에 띄었다. 그래, 화장도 안 지우고 잤구나. 오늘의 이불킥 챔피언상 드립니다.


"누나? 얼른 아침 먹으러 나와요. 늦장 부리면 다시 들어간다."
"아,아- 알았어. 가고 있어."


한바탕 뒤집어졌을 피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자꾸 축 처지는 눈꺼풀을 애써 들어올리며 의자를 당겨 앉았다. 토스트? 심했다. 내가 아침 당번일 때는 김밥 같은거 시키더니! 뚱한 표정으로 접시만 바라보고 있자 마츠카와가 입을 열었다. 왜, 맛 없어요? 나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
"삐졌어?"
"……아니거든."
"아, 어제 아팠구나. 말을 하지."
"아니거든!!"


그럼 뭐에요. 먹여줘? 됐거든. 나도 손 있네요. 그릇에 손을 뻗어 토스트를 집었다. 식빵 끝 부분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살짝 이빨로 베어 물었다. 왜인지 옆에서 아기새를 쳐다보는 어미새의 눈길이 느껴졌다. 밥 먹는데 왜 보고 있어. 너는 안 먹고. 고개를 돌려 마츠카와를 쳐다보고는 말했다. 나는 됐네요. 누나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우리 맛층 이제 다 컸구나……."
"나 성인이거든요? 지금까지 애랑 동거하셨나봐. 경찰 아저씨, 여기 범죄자가……."
"… 내가 말을 말지."


흐응, 내가 애면 누나는 애기지. 마츠카와가 눈꼬리를 휘며 덧붙인 말 속에 가시가 보였다. 무슨 뜻이야? 맘대로 생각해요~ 마치 늘씬한 표범처럼, 그는 거실 소파로 여유롭게 도망쳤다.


"아, 맞아. 내가 아침 당번이었으니까 빨래는 누나 몫으로?"


그래, 잠깐 두근거렸던 내가 바보였다. 어떻게 이렇게 두근거릴 찰나도 주질 않니. 그래도, 그래도 너와 같이 사는 내가 알겠지. 네 멋진 구석을. 아직 발견하진 못했지만!

'DREAM' 카테고리의 다른 글

Ssul2  (0) 2016.01.31
Ssul1  (0) 2016.01.31
[牛]원수드림_ssul  (0) 2016.01.30
[黃]02.보이지 않는  (0) 2015.12.19
[黃]01.보이지 않는  (0) 2015.12.17
Posted by 다이류
,

Ssul2

DREAM 2016. 1. 31. 23:49
모든 이야기는 한국의, 어떤 고등학교 교무실에서 시작되었다.

"한나야, 정말 교환학생 해볼 생각 없니? 넌 일본어도 잘 하고, 인맥도 쌓는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선생님…. 저 생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한데, 아직 저희 학교에 완전히 적응한 것도 아니고- 제가 다른 곳에 가면 해이해질까 봐 그래요. 일본어를 그렇게 잘 하는 편도 아닌걸요."
"그래도, 이미 그쪽 학교랑은 절차를 다 밟았어. 일본에서도 교환학생으로 몇 명이 올 거고. '교환'학생이니만큼 우리 학교 학생도 가야 하는데 지원자가 없어서 그래."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
"잘 생각했어. 마음 정해지면 다시 오고."

문 앞까지 배웅하는 담임 선생님을 뒤로 하고, 교무실을 잽싸게 빠져나갔다. 아, 짜증나-하는 궁시렁거림은 속으로 삼키면서. 사실 그녀는 교환학생이나, 해외 봉사활동같은 대외 행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교 나오고, 별 탈 없이 졸업해서 괜찮은 직장을 얻는 게 그녀의 미래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큰 걸림돌이 나타날 줄이야! 선생님 말대로 -한국 교육과정에 있는- 일본어 성적은 뛰어났지만 원어민과 원활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잘 해낼 리가 만무했다.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계산하며 복도를 걸어가자, 곧 교실에 다다랐다. 달아오른 여름 햇살에 살짝 더운 습기가 손가락 사이사이에 가득 찼다.
축축하게 식은 손을 치마 언저리에 문지르며 의자를 뒤로 당겼다. 자리에 앉아 자매결연을 맺었다는 -그녀가 반강제로 가게 될- 학교의 팜플렛을 펼쳤다. 불친절하게도 한국어 해설은 없는 것 같았다. 고유명사로 보이는 영단어 몇 개를 차츰 읽어내려갔다.

"현립카라스노 고등학교…. 미야기 현에, 있고…."

그녀는 팜플렛의 중간 즈음에 눈을 멈추었다. 발리볼, 배구였지. "배구 강호 카라스노, 전국을 목표로!"라고 큼지막하게 써 있는 페이지에는 체육관과 -배구부로 보이는- 선수들의 단체사진이 있었다. 부원이 많은 듯 다수의 얼굴을 우겨넣은 사진들이 숱하게 이어졌다. 그렇구나, 배구 강호구나.
스포츠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날 좀 보라"고 외치는 듯한 배구 페이지를 넘겼다. 다른 페이지는 꾸미는 데 그렇게 공을 들이지 않은 듯했다. 팜플렛은 원래대로 접어 가방 한 구석에 우겨 넣었다.




*




"그래, 잘 생각했어. 어려운 거 있으면 바로 선생님한테 연락하고. 홈스테이 하는 집 주소는 알고 있지?"
"네. 공항버스 교통 노선도도 다 프린트했어요. 이제 가면…, 겨울방학 때 돌아오는 거죠?"
"응, 그렇지. 그래도 지내는 데엔 문제 없을 거야. 최대한 편하게 지낼 수 있게 했으니까."

감사합니다, 하고 덧붙인 뒤 쥐고 있던 캐리어 손잡이를 끌었다. 묵직한 감각이 팔을 타고 올라오는 듯 했다.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공항 바닥을 긁으며 울렸다. 준비할 게, 여권하고 티켓이랑… 입국심사도 있고. 도착하면 지하철 표도 끊어야지. 입술 거스러미를 물어뜯으면서 "준비할 많은 것들"을 생각하니 체크인하는 곳에 다다라 있었다. 아, 줄 길다. 입술에서는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DREAM' 카테고리의 다른 글

[松]오늘도 반짝  (0) 2016.02.09
Ssul1  (0) 2016.01.31
[牛]원수드림_ssul  (0) 2016.01.30
[黃]02.보이지 않는  (0) 2015.12.19
[黃]01.보이지 않는  (0) 2015.12.17
Posted by 다이류
,

Ssul1

DREAM 2016. 1. 31. 23:48
츠키시마/한나 대화썰

"또 펴요?"
"알 바야?"
"예쁜 형수님이 담배를 물고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파서 그러죠."
"안 닥치지."
"형한테 이를…."
"아 진짜. 끈다고."
"너는 나한테 못 이겨요."

"그런데, 넌 내가 담배를 피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난 성인이고, 합법적으로 흡연할 수 있거든?"
"말했잖아요. 예쁜 형수님한테 담배는 안 어울린다고."
"…."
"농담이고, 그런 표정 짓는 게 재밌으니까. 꼭 내가 이런 말 하면 미간을 찡그리던데, 그쵸?"
"사디스트구나."
"아닌데요."

"왜 우리 형 좋아해요?"
"멋지고, 잘생기고, 키도 크고, 노력파고, 다정하고…."
"아니, 그렇게 잘난 우리 형이 아깝다고요. 뭐 이런 여자를 만나서. 여자 보는 눈이 없나봐."
"죽을래."

"자꾸 나한테 왜 그래! 제발 조용히 좀 살자, 응? 나 괴롭혀도 뭐 나오는 거 없거든?"
"삶의 재미?"
"…네 형이 아키테루 아니었으면 넌 지금 지옥불에 떨어졌을 거야."
"다행이네요~"

"저번에, 우리 교실 왔던 누나 누구야? 여자친구? 츠키시마 능력 좋은데?"
"아닌데. 형 여자친구."
"엑, 아쉽다. 둘이 잘 어울렸는데 아니었구나."
"…아니거든…!"
*
"야, 너랑 나랑 잘 어울린대요."
"아, 기분나빠. 내가 왜? 그렇게 성격 더러워 보였나?"
"성격 더럽잖아요."
"시끄러워."
"근데 진짜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미친놈."
"누나, 데이트 생각 있으면 메일 줘요?"
"소름돋네. 뭔진 모르겠지만 내가 잘못했다."
(ㅋㅋㅋㅋㅋㅋㅋ)

"


'DREAM' 카테고리의 다른 글

[松]오늘도 반짝  (0) 2016.02.09
Ssul2  (0) 2016.01.31
[牛]원수드림_ssul  (0) 2016.01.30
[黃]02.보이지 않는  (0) 2015.12.19
[黃]01.보이지 않는  (0) 2015.12.17
Posted by 다이류
,

[牛]원수드림_ssul

DREAM 2016. 1. 30. 22:33



'DREAM' 카테고리의 다른 글

Ssul2  (0) 2016.01.31
Ssul1  (0) 2016.01.31
[黃]02.보이지 않는  (0) 2015.12.19
[黃]01.보이지 않는  (0) 2015.12.17
[黃]00.보이지 않는  (0) 2015.12.17
Posted by 다이류
,

[黃]02.보이지 않는

DREAM 2015. 12. 19. 22:39


02. 우연 혹은 필연

“들었어? 그 있잖아, 모델. 키세 료타라고, 걔 스캔들 났다더라.”

“어머 어머, 웬일이니? 은퇴할 때까진 솔로라고 그렇게 자부하더니 이제 볼일 다 봤네. 누구랑 났다니?”

“그…, 아마 신인일걸? 이름도 처음 들어 봤던 여자던데.”

월요일,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들리는 이야기였다. 보고 싶어서 만날 인터넷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쳐 봤다가, 차마 가슴이 떨려 보지 못하고 창을 꺼 버렸던 그녀였다. 이제 그녀는 과 여학생들의 뒷말을 통해서 간간히 전해 듣는 처지가 되었다. 키세 료타가 스캔들이 났다더라, 신인이라던데? 갓 데뷔한 애한테 뭔 짓을 한다는 거니, 나쁜 놈이니. 무심한 척, 안 들리는 척 했지만 여자의 손은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키세 료타, 유럽 투어 이후 생긴 연정인가?>

<키세 료타의 그녀, 그녀의 정체는?>

여자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검색 버튼을 눌렀다. 키세와 신인 모델이라는 그 여자의 관계를 다룬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핸드폰 화면을 껐다.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핸드폰을 놓고 손을 쥐락펴락했다. 차갑고 낯선 감각이 느껴졌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땀이 찼다.

뭐, 헤어졌는데 새 여자 사귈 때도 되었지. 예쁘려나? 착하겠지? 그 성격에 어떻게 이리 빨리도 사귄다니. 아, 여자가 많이 꼬이긴 하지. 꽤나 고생할 거야. 아, 저 스캔들은 진짜일까?

이름도 모르는 여자 걱정부터 스캔들의 진위까지 재차 쓸데없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전공 교수님이 들어와 수업의 시작을 알릴 때 까지도 여자는 초조하게 책상만 딱딱 두드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

“그래서, 다음 시험은 조별과제로 대체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원 편성표는 홈페이지에 이미 고지해놓았으니 확인하고, 이번 주까지 개요표 짜 오도록 하세요.”

조별과제라는 말에 온 교실이 야유로 가득 찼다. 졸리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수업에 집중을 한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한 시간을 보낸 여자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말대로 홈페이지에는 새로운 파일이 올라와 있었다. 그녀는 식은땀 덕에 차가워진 손가락을 들어 다운로드 버튼을 클릭했다.

조원은 아주 나쁘진 않았다. 여자는 나름 안면이 있는 여학우 둘과 배정이 되었다. 책임감이 아예 없는 조원은 없어 보여 다행이었다. 둘 중 한명이 여자에게 오늘 바로 카페에 모이자고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녀는 딱히 나갈 약속도, 먹을 저녁도 준비해 놓지 않았기에 그러자고 대답했다. 핸드폰 화면을 켜서 시간을 확인하고, 거울을 꺼내 눈 주변을 살폈다. 오늘은 눈가가 붓지 않은 것 같았다. 한두 달 전만 해도-심지어 갓 개강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자는 퉁퉁 부은 얼굴로 화장은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출석하는 일이 허다했다. 지금도 꼬투리를 잡자면 한두 부분이 아니지만, 장족의 발전이었다. 여자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정돈하고 강의실을 나갔다.

*

과제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조원들은 -수다를 많이 떨긴 했지만- 여자의 의견을 곧잘 수용해주었다. 그들은 생각보다 알고 있는 게 많았다. 아니, 모르는 게 없을 거라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인문대에서 누가 제일 인기가 많다더라, 어떤 선배가 여자 후배를 성추행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연예계 뒷사정까지 속속들이 꿰고 있었다. 그 중에는 키세, 그 남자의 이야기도 끼어 있었다.

“아, (-) 너 잘생긴 남친 있다고 하지 않았어? 우리 같은 관데, 얼굴이라도 좀 보여주라.”

“…어. 어? 아니, 없어. 잘…생기긴 했었는데, 오래 전에 헤어졌어. 그래서 뭐, 이젠 남친도 아니야.”

‘아…….’하고 이어지는 두 여학생의 목소리. 공연한 것을 물어봤다는 듯 겸연쩍어 보였다. 여자는 실없이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한 명은 어색해진 분위기를 만회해보고자 흥미로운 얘기를 꺼냈다.

“맞다, 맞다. 요즘 키세가 그렇게 핫하다며. 웬 스캔들이라니. 설마, 정말 해외 촬영가서 눈 맞은 거 아냐?”

“키세는 모르겠고, 그 아줌마는 후원기업 사모님이라잖아. 키세도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떻게 그런 소문이 났다니…….”

아무래도 가재는 게 편인 듯싶다. 여자가 아는 그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좀 싸가지 없긴 하지만, 입에 담지 못할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 양아치는 아니었다. 그들이 그를 싫어해서 꺼낸 이야기가 아님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화가 나 뺨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 상태로 타자를 친다면 결과물이 차마 볼 수 없을 지경일 것은 여자도 알고 있었다. 마침 남은 부분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집에서 정리해 가는 것이 나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아, 시간이 좀 많이 지체돼서. 나 집에 들어가 볼게. 개요표는 내가 완성해 와도 되지?”

“응, 응? 괜찮아. 우리가 더 고맙지 뭘.”

거의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낸 여자는, 가방과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여름이라 그런지 밤인데도 후텁지근했다. 집에 도착하면 씻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여자는 테이크 아웃 컵에 흐르는 물기를 훔쳐 대충 옷에 문질렀다.

머지않아 초록불이 켜졌다. 여자는 발걸음을 옮겼다. 횡단보도의 중간 쯤 다다랐다고 생각되었을 때, 커다란 손이 그녀를 붙잡았다.

“누구예요?”

“어제 공원에서요. 그… 흰색 원피스 입고 계셨던 분 아니세요?”

“맞는데, 혹시…?”

남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맞다고 대답했다. 봐요, 옷도 똑같잖아요. 그제서야 여자는 남자의 옷이 여름과는 거리가 먼 것을 알아챘다.

“안 더우세요?”

“괜찮아요. 워낙 추위를 많아 타서요. …죄송한데, 번호, 좀…….”

“네?”

남자가 그럴듯하게 꾸며낸 변명은 여자에게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했다. 그는 -아무리 얇은 옷이라고는 해도-긴팔에 긴 바지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곧바로 남자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친구 해요! 그러니까 번호 좀 주실 수…….”

절대 불순한 의도는 아니구요, 하고 덧붙인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곤 여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녀는 얼빠진 표정을 짓다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네, 친구 해요.”

여자는 상대가 내미는 핸드폰을 받아 들고는 번호를 찍었다. 이름까지 다 입력하고 저장 버튼을 막 누르려고 할 때, 사방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울렸다. 여자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어, 빨간불…….”

여자는 횡단보도 신호등이 어느새 붉은 빛으로 변한 것을 알아차렸고, 핸드폰을 남자에게 넘겨주었다. 빵빵거리는 자동차들 사이를 지나, 여자는 맞은 편 인도를 향해 뛰어갔다. 뒤를 돌아,

“꼭 연락해요.”

하고 남자 쪽을 향해 소리쳤다. 아직도 석고상처럼 도로 한복판에 멍하니 서 있는 그를 향해 다시 경적 세례가 퍼부어진 것은 몇 초 뒤의 일이었다.

'DREAM' 카테고리의 다른 글

Ssul2  (0) 2016.01.31
Ssul1  (0) 2016.01.31
[牛]원수드림_ssul  (0) 2016.01.30
[黃]01.보이지 않는  (0) 2015.12.17
[黃]00.보이지 않는  (0) 2015.12.17
Posted by 다이류
,

[黃]01.보이지 않는

DREAM 2015. 12. 17. 13:33


01. 만남

밤늦게까지 울다 지쳐 잠들었던 그녀는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깨어났다. 그의 생일 다음날. 여느 때라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를 마중 나갈 그녀였겠지만, 그녀를 반기는 건 다 녹아버린 케이크와 양초뿐이었다. 다행히도 그 날은 수업이 없어 여자는 조금 더 여유로울 수 있었다. 약속도 없고 강의도 없을 텐데도 그녀는 부지런히 방을 치우며 외출 준비를 했다.

“…….”

옷을 고르던 그녀의 손이 흰색 실크 원피스에 멈췄다. 한 눈에 보기에도 고가의 유명 브랜드에서 나온 옷이었다. 파스텔 톤 리본으로 단아하게 꾸며진 그 원피스는, 여자의 손에서 못생기게 구겨지고 있었다. 그 원피스는 얼핏 봐도 여자와 잘 어울렸다. 그녀는 한참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 듯 다시 황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가방을 챙겨 오피스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또각또각, 하는 하이힐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여자는 어젯밤처럼 어두운 표정이었다. 그리움과 미안함, 그리고 원망스러움이 그녀의 얼굴에 스쳐지나갔다. 눈을 감고,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웅얼거리니 이윽고 정거장에 거의 다다라 있었다.

“삑-. 성인입니다.”

매일같이 버스를 타면서 듣는 낯익은 소리. 그녀에겐 오늘따라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성인, 성인이라. 벌써 어른이네. 그 단어를 곰씹으며 어지러운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채웠다. 그를 만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대학생이구나. 사귄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그가 수줍게 고백해온 날이 어제 같은데 벌써 헤어진 지 세 달째구나. 쓸데없는 생각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곪은 상처를 찔렀다. 무슨 생각을 해도 그가 생각났다.

어느새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

그녀가 향한 곳은 그녀가 졸업한 고등학교 근처의 공원이었다. 그녀가 살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그곳에는, 넓은 잔디밭에 좁다란 산책로가 듬성듬성 놓여있었다. 도착하니 벌써 한낮은 지나 있었다. 여자는 눈부신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계속 공원을 걸었다. 맴돌았다.

그렇게 미련을 가지고 같은 곳을 한참 서성이는 것을 보면 무언가 추억이 어린 곳이리라. 그녀는 멀찍이 서서 벤치에 앉아 있는 한 쌍의 남녀를 바라봤다. 싸들고 온 음식을 서로에게 먹여주며 웃는 그들은, 과거 한때 남자와 여자의 모습에 겹쳐졌다.

여자는 움찔거리며 떨리는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공원 반대편으로 다소 급하게 걸어갔다.

잠깐 잠이 들었나 보다 했더니, 하늘에는 노을이 빨갛게 지고 있었다. 아무리 한여름이라도 저녁엔 쌀쌀할 것임이 분명한데, 여자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다시 걸었다. 하늘하늘한 치맛자락이 산들바람의 리듬에 맞추어 팔락이자, 여자의 몸도 따라 하늘거리는 것 같았다.

다시 어딘가의 벤치에 앉아 시간을 확인해 보니 여덟 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해는 이미 모습을 감추었다. 그제야 여자는 추위를 느꼈는지 자신의 팔을 감쌌다. 완공된 지 오래된 산길의 산책로라, 가로등도 뜸했다. 핸드폰 불빛 없이는 열 발걸음 앞도 캄캄했다.

“어…….여기서 뭐 해요?”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어떤 남자의 인기척에 여자는 놀란 듯싶었다. 몸을 살짝 떨며 그에게서부터 떨어지자, 곤란한 듯 웃는 남자의 목소리에 여자는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그냥 여자 분이 인적 뜸한 길을 돌아다니시기에 위험할 것 같아서요. 놀라셨다면 미안해요.”

“아…….”

머플러 같은 무언가에 갇혀 새어나오는 대답에 여자는 불안감을 덜었다. 휴우……, 하고 여자가 작은 한숨을 쉬자 소리 없는 남자의 웃음이 들려왔다. 여자는 문득, 혹시 그가 내 곁에 남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풀어졌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간간히 이어졌던 대화가 끊어졌다.

“혹시 여기서 뭐 하고 계셨어요?”

“…….”

다시 밤공기를 울리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 듣지 못한 것인지, 혹은 대답하기 싫은 것인지 여자는 계속 침묵을 지켰다. 한참 계속되는 정적에 남자가 다시 입을 뗐다.

“저기……,”

“네, 네? 죄송해요. 잠깐 딴 생각을 했나 봐요.”

여자는 남자의 말을 흘려들은 것이 미안한 듯,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으며 말했다. 고의가 아닐지언정, 말을 무시했던 것이 겸연쩍은지, 여자는 말을 이어갔다.

“저기 앞에 학교 보이세요? 불 켜져 있는 곳이요. 저기가 제가 나온 고등학교인데, 갑자기 와 보고 싶어져서 와봤네요.”

“그러셨구나. 저도 저기 나왔어요. 우리 동문이네요?”

남자가 키득, 하고 웃었다. 가로등 불이 나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여자는 문득 남자의 얼굴과 표정이 그녀의 옛 연인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머지않아 남자를 따라 웃던 여자의 미소가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다시 침묵.

“어……음. 저기, 저기요?”

“아, 네. 네? 말씀하세요. 자꾸 멍을 때리게 되네요. 최근에 안 좋은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도 세 달 전 얘기지만.”

“세 달 전이요? 뭣 때문에 세 달 동안이나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셨어요?”

다시 무안한 웃음을 짓던 여자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이 얘기를 해도 될까. 키세도 나름, 아니 이젠 당연히 공인인데. 나쁜 소문이 돌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그래도 물어 본 그의 성의도 있고, 어디라도 털어 놔야 그 감정이 풀릴 것 같았기에 여자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제 남자친구…, 아니 이젠 전 남친이죠. 걔가 겨울에 출장을 갔었는데, 저도 그렇고 걔도 서로서로 사정 때문에 연락이 잘 안 됐었거든요. 심했을 적엔 문자도 일주일 뒤에 본적도 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던가요. 그래서 오늘이 헤어진 지 101일 째네요.”

남자는 괜한 것을 물어봤다는 듯 미안한 표정이었다. 여자는 남자의 얼굴을 볼 순 없었지만, 짐작이 가는지 웃음으로 말을 맺었다.

“뭐, 별 거 아니에요. 헤어질 때가 되었으면 헤어지는 거지, 제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어요. 그렇잖아도 바쁜 애를.”

“그래도, 그래도 포기하면 안 되죠. 서로 좋아하니까 사귀었을 것 아녜요. 헤어지고 싶어서 헤어진 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다시 한 번 붙잡았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여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잖아도 구차하게 매달렸었다. 헤어지잔 키세에게 계속 따졌다. 왜, 왜? 어째서? 말하기는 창피한 내용이었는지, 그녀는 말을 얼버무렸다.

“하하, 바빴나 보죠. 나름 오래 사귀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로 끝날 인연이었나 봐요. 저도 새 사람 만나서 다시 정신 차려야 하는데, 그죠?”

새 사람. 지금 그녀에게는 다른 남자를 만날 여유가 없었다. 눈만 뜨면 키세의 환한 웃음이 생각났고, 눈을 감을 때도 전화로 노래를 불러 주던 그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렸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기억을 한창 곱씹고 있을 무렵, 여자의 핸드폰이 울렸다.

“앗, 잠깐만요. 친군데…, 곧 버스가 끊기나 봐요.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먼저 가겠습니다!”

“아……. 저, 저기요! 안녕히 가세요…….”

여자의 오피스텔과는 그렇게 멀지 않았지만 걸어가기엔 곤란한 거리. 조금 있으면 마지막 버스가 온다는 연락에 여자는 급히 가방을 들고 뛰어갔다. 가을이나 초겨울이라고 계절을 착각할 정도로 온몸을 옷으로 휘감은 그 남자는, 무언가 할 말이 있었는지 여자를 급하게 다시 불렀다. 하지만 못 들은 듯, 그녀는 버스 정류장으로 급하게 달음박질했다.

남자는 가로등 불에 반짝이는 손목의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돌아섰다. 이들의 만남은 그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DREAM' 카테고리의 다른 글

Ssul2  (0) 2016.01.31
Ssul1  (0) 2016.01.31
[牛]원수드림_ssul  (0) 2016.01.30
[黃]02.보이지 않는  (0) 2015.12.19
[黃]00.보이지 않는  (0) 2015.12.17
Posted by 다이류
,

[黃]00.보이지 않는

DREAM 2015. 12. 17. 13:32

Love cannot dwell with suspicion



00. 헤어진 지 100일, 그 남자의 생일

「생일 축하해, 료타!」

「고마워요, (-)치! 자자, 우리 사진 찍어요!」

찰칵.

“…….”

어느 늦은 여름밤,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소파 앞 테이블 위에 다소곳이 올려진 케이크는 그 방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집 안에 덩그러니 놓인 소파 위에서, 그 여자는 핸드폰만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여자는 그렇게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한참을 울먹이더니, 갑자기 울컥,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쁜 새끼.”

하고 중얼거린 그녀는 술에 취한 듯 몇 마디를 더 웅얼거리면서 옆으로 엎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두 눈은 아직도 핸드폰 안의 남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여자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쁘게 웃으며 화면 속 케이크의 촛불을 끄곤 함박웃음을 지었다. 세상에서 자신들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는 듯.

여자는 한동안 화면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쏟더니 소파 위에 놓여 있던 술병을 통째로 들이켰다. 그대로 그녀는 서서히 눈을 감더니 잠에 든 것 같았다. 테이블 위 케이크 촛불은 초를 녹이며 활활 타오르다 곧 꺼져 버렸다.

*

그 날도 그랬다. 그날도 변함없이 화사했던 귤색 머리의 남자는 밝게 웃으며 배웅 나온 여자를 맞았다. 핸드폰 화면 속 그녀와 같은 여자였다. 아직까진 쌀쌀한 늦겨울의 이른 새벽, 남자는 여자를 두고 외국으로 출장을 떠났다. 학생의 풋풋함이 아직 남아 있지만, 어른스러운 분위기도 물씬 풍기는 그는 유명 모델, 키세 료타였다. 여느 연인들과 같이 그 한 쌍의 커플은 잠시간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서로 손을 흔들었다. 남자가 게이트를 통과하고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던 남녀는 서로 때문에 눈물을 흘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믿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개구리가 울 때까지 서로를 그리워하며 문자나 메신저로만 연락을 이어 갔었다. 둘 사이의 먼 거리 때문인지, 시간이 갈수록 쌓여만 가는 과제와 스케줄 때문인지 몇 달 사이 연락은 굉장히 뜸해졌다. 남자는 점점 일 때문에 핸드폰도 켜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고, 여자는 밀린 리포트 때문에 집에서 깨어 있는 날마저 손에 꼽았다.

료타- (-)치? 3:54 PM」

「아, 료타구나. 미안해. 문자를 못 봤나봐. 무슨 일 있어? 12:56 AM」

료타- 나 다음 주면 일 끝날 것 같아요. 늦어서 미안해. 1:04 AM」

「뭘. 빨리 와~1:06 AM」

라며 어쩐지 달라진 분위기로 문자를 보내던 남자. ‘미안하다’는 말에 다른 의미의 미안함도 언뜻 보이는 것 같았다. 그가 돌아오기 딱 하루 전, 그는 이별을 고했다. 일이 바빠서 챙겨주지 못했다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평소와는 달랐던 남자의 말투는 어딘지 억지스러운 면도 있었다.

원래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출장이었다. 돌아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일이 걸리리라는 것도 반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다 알고 있었는데, 몇 달쯤 떨어져 있어도 이만큼 봐온 것이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겹도록 봐 온 얼굴인데. 그랬던 것이, 잠시 떨어져 있는 틈을 타 권태기가 온 것이었을까? 이 커플, 아니 구(舊) 커플은 이별을 준비하지 못한 채로 그것을 맞이했다.

여자는 머리가 띵, 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그는 몇 년 간의 인연을 몇 초 만에 끊어버릴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라고 부정하며 최근에 자신이 잘못했던 것이 있었는지 되짚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크게 잘못한 일은 없었다. 굳이 있다면 너무나 먼 둘 사이의 거리에 불안해했고, 남자가 돌아온다는 사실에 너무 들떠서 그에게 부담을 준 것일지도. 그에게 왜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미안하단 메아리뿐이었다. 질렸느냐고, 힘들었냐고 물었지만 대답은 같았다. 주체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여자는 남자를 원망하고, 자신을 원망했다. 이미 서로에게 크나큰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한 건 여자뿐이었을까.

그가 돌아왔다고 생각될 무렵, 그녀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들리는 목소리는 없는 번호라는 기계음이었다.

'DREAM' 카테고리의 다른 글

Ssul2  (0) 2016.01.31
Ssul1  (0) 2016.01.31
[牛]원수드림_ssul  (0) 2016.01.30
[黃]02.보이지 않는  (0) 2015.12.19
[黃]01.보이지 않는  (0) 2015.12.17
Posted by 다이류
,